2009. 7. 26. 21:07



제가 두려움이 너무 많고 눈치를 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도 못하고 저에게 하는 싫은 소리도 소화해 내지 못합니다. 저번에 제가 질문 드렸더니 스님께서 남편에게 먼저 싫은 소리를 한번 해 보라고 하셔서 해 보았는데, ‘너는 네가 원하는 것만 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질문하신 분은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 하는 사람이 아니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거꾸로 자기는 남을 배려해서 남에게 싫은 소리도 못하고 언제나 손해 보는 인간이라고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해결책이 안 나는 겁니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것은 본인이 상대를 배려해서 그런 게 아니고 너무 이기적이기 때문에 그래요. ‘내가 상대에게 어떤 얘기를 하면 상대가 내 말을 꼭 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한 거예요. 그래서 눈치를 보면서 안 들어줄 것 같은 생각이 들면 말을 안 하는 거예요. 이건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려는 거예요. 그런데 원하는 대로 안 되면 입을 딱 다물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말이 적고 굉장히 착해 보이지요. ‘착한 여자 무섭다.’ 라는 말이 있어요. 착한 여자는 황소고집인데 그 이유는 자기가 고집이 센 줄 모르기 때문이에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착하다고 칭찬하기 때문에 자신이 잘못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해요. 착한 여자는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보따리 싸서 나간다든지 하는 일을 저지릅니다. 착한 여자가 진짜 착한 게 아니에요. 자아가 엄청나게 강하기 때문에 그래요. 남편한테 대들고 싸움을 못 하는 이유가 ‘너 같은 인간 하고 싸우는 내 자신’이 용납이 안 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겉으로는 그냥 입 다물고 있지만 속으로는 ‘너는 인간도 아니다.’ 이렇게 멸시하고 있지요.

 

 

내가 어떤 얘기를 할 때 상대가 내 얘기에 동의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지금부터 버리세요. 내가 상대에게 어떻게 해달라고 말할 때, 그것은 나의 생각이고 나의 요구입니다. 그걸 상대가 들어줘야 할 어떤 이유도 없어요. 들어주고 안 들어주고는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내 요구에 대한 결벽성과 완벽성 때문에 말을 못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앞으로는 남편이 뭐라고 하든 하고 싶은 말을 그냥 해버리세요. 그러면 상대방이 싫다고 할 거예요. 그때 상대가 싫다고 하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남편이 “너는 너밖에 몰라.” 하면 “그래, 당신 말이 맞네, 듣고 보니 나는 나밖에 모르네.” 이렇게 받아들이란 말이에요. 그러면서 내일 또 얘기해 버려요. 그러면 “넌 너밖에 모른다고 내가 얘기해줬는데도 계속 그렇게 할래?” 하면 “그래 맞아, 그렇네.” 하며 받아들여요. 이렇게 상대를 통해서 내 모습을 찾아가야 해요. 이런 지적을 계속 받으면서 두려워하지 말고 연습을 하는 거예요.

 

 

내가 내 속에 있는 말을 못하는 것은 상대편 때문에 못하는 게 아니라 내 결벽성 때문에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일어나는 생각대로 계속 말을 내뱉어버려요. 그렇게 계속 내뱉으면 상대로부터 비판이 들어오겠죠? 그것을 비판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상대편의 뜻으로 받아들이세요. 그렇게 교감을 해나가면 상대와 진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본인도 자기 말을 마음껏 할 수 있고 상대의 의견도 다 들어줄 수가 있는 열린 자세가 되는 거예요. 지금 마음이 꽉 닫혀 있어서 자꾸 연습을 해야 합니다.

 

 

‘당신은 이기적이다.’라는 남편의 말에 자책하지 말고, ‘그래, 나는 나밖에 모르는 인간이야’ 이렇게 받아들이세요. 이 세상 사람들은 다 자기밖에 모릅니다. 이게 진실이에요. ‘나는 남을 위하는 사람이다.’ 이건 거짓이에요. 나는 나밖에 모르는 인간임을 인정할 때, 상대도 마찬가지임을 알고 그를 이해하게 되지요. 이렇게 진실을 알아가는 거예요. ‘좋다, 싫다, 나쁘다’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응, 그래. 가만히 살펴보니 내가 나밖에 모르는 인간이네.’ 이것을 알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계속 부딪쳐 보면서 수행해 나가세요.

Posted by 하늘위로
2009. 7. 26. 21:01
3) 아침에는 108배, 자기 전엔 염불

이제 108번뇌와 108배의 참 의미를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108염주를 지니는 까닭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불자들 중에는 108염주를 매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이 108염주는 액세서리가 아니다. 108번의 염불과 108배를 통하여 108번뇌로써 지은 죄업들을 참회하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부처님 앞에 한 번 절하고 한 개 돌리기를 108번하면서 108번뇌를 끊어 나가라고 108염주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108번뇌가 완전히 소멸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최종 목적인 부처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불자들은 매일 108배를 생활화하는 것이 좋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108배, 저녁에 자기 전에는 108염불! 이것을 생활화하면 마음이 점차 모이고 맑아져서 언젠가는 삼매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불보살의 은근한 가피, 곧 명훈가피를 얻어 재난은 스스로 피해 가고 가정은 두루 편안해지며, 기쁨과 행복이 충만해지게 되는 것이다.
만일 집에서 108배를 할 여건이 되지 않은 경우라면 절을 찾을 때만이라도 꼭 108배를 하도록 하자. "절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사찰을 절이라고 부른다."는 속설이 있듯이, 좋은 도량을 찾았을 때만이라도 법당의 부처님께 지극 정성 108배를 올리는 신심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이제 아침 108배, 저녁 잠들기 전의 기도를 통하여 소원을 이룬 세 고시생의 이야기를 하면서 제 2장의 '생활 속의 기도법'에 대한 글은 매듭짓고자 한다.

약 10여 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재가 불자의 참선 수련 도량으로 바뀌었지만 당시 해인사 원당암은 고시생들이 많기로 유명하였다. 원당암에서 공부하여 사법고시에 합격한 사람이 10여 년 동안 50명도 넘었기 때문이다. 자연 방을 얻으려는 경쟁이 치열해지자, "돈을 2배, 3배 주겠으니 있게 해 달라."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원당암 스님들이 누구인가? 오히려 네 가지 규칙을 정하여 그 규칙을 준수하겠다는 사람들만 받아들였다.
첫째, 새벽 예불에 참석해야 한다.
둘째, 술과 담배를 먹지 못한다.
셋째, 여자 친구의 방문은 사절한다.
넷째, 주지 스님 허락 없이는 바깥출입을 금한다.
처음 이렇게 다짐하고 원당암에 있게 된 고시생 중, 3명의 학생이 몰래 해인사 관광촌으로 내려가서 한잔 먹다가 주지 스님께 들키고 말았다.
"이놈들! 당장 원당암에서 나가거라."
책보따리를 절 마당에 들어내 놓고 몽둥이를 잡은 채 호령하는 주지 스님의 서슬에 놀라 그들은 암자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러나 집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세 사람은 궁리 끝에 나를 찾아왔다.
"저 위의 지족암 큰스님께 찾아가 보자. 혹시 거지 있으라고 할지도 모르잖아."
그러나 방이 없는 지족암에 '있으라'고 할 수도 없는 일, 나는 잠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희들, 사법고시에 꼭 합격하고 싶지?"
"예!"
"그런데 공부는 잘 되지 않고?"
"예, 공부하기가 통 싫습니다."
"내가 공부하고 싶도록 해줄까? 공부 잘 되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어떻게요?"
"너희 마음대로 안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부처님의 법 아닌가! 내가 시키는 방법대로 해볼테냐?"
"예, 공부만 잘 된다면 하지요."
"첫째, 너희들이 절에 와 있으니까 부처님께 절을 해야 한다. 새벽 예불 목탁 소리가 나거든 무조건 법당으로 달려가서 절 108배를 해라. 108배를 하면 아침에 국민 체조를 하는 것보다 더 좋다. 몸이 아주 건강해진다. 손가락 발가락까지도 운동이 다 되고 목운동 허리 운동 발목 운동 온 전신운동이 다 되는 것이니까. 운동 가운데 절하는 운동보다 더 좋은 운동이 없다. 할 수 있겠느냐?"
"예."
"이렇게 부처님께 108배를 드리면서 '부처님, 공부 재미있게 해주십시오. 공부 재미있게 해주십시오. 시험에 꼭 붙게 해주십시오.....' 하면서 간절히 기원해야 한다."
"두 번째 잠들기 직전에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자는 것이다. 먼저 코로 심호흡을 세 번 또는 일곱 번하고, 관세음보살을 아주 빨리, 108번을 불러라. 처음에는 3-40번밖에 못 부를 것이지만 일단 한숨 동안 부르고 나서 '관세음보살님! 꼭 시험에 되게 해주십시오. 공부 잘 됩니다. 공부가 재미있습니다.' 이렇게 3번 기원을 해라. 그렇게 한숨에 염불을 세 번 또는 일곱 번 정도 하여야 한다."
"스님, 왜 관세음보살을 그렇게 빨리 불러야 합니까?"
"관세음보살을 천천히 부르면 생각이 서울 갔다가 대전 갔다가 부산 갔다가, 왔다갔다하게 된다. 그럼 효과가 없어. 관세음보살을 아주 빨리 부르면, 부르기 급한데 어디 갈 여가가 있나? 생각이 도망칠 틈이 없게 되고 마음이 하나로 모이니까 틀림없이 힘이 모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공부를 하다가 정신이 흐릿해지거나 마음이 풀어질 때에도 이렇게 관세음보살을 불러 보아라.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학생들은 아주 좋아하면서 꼭 실천하겠다고 다짐하였고, 나는 그들을 데리고 원당암으로 가서 주지 스님에게 부탁하였다.
"학생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앞으로 잘하겠다고 하니 한 번만 용서하시오."
그날부터 시험 치기 전까지 약 100일 동안 세 학생은 기도와 공부를 부지런히 하였고, 마침내 세 사람 모두 사법고시에 합격하였다. 기쁨에 넘친 그들은 법관 교육을 받기 위해 사법연수원으로 가기 직전, 커다란 케익을 사 들고 나에게로 찾아왔다. 그리고 시험장에서 있었던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스님, 시험장에 앉아 주위를 돌아보니 모두가 백짓장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 얼굴을 가진 사람은 저희들뿐인 듯했습니다. 저희들은 시험지가 나오기까지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불렀습니다.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스님, 막상 시험문제를 받고 보니 거기에 기적이 있었습니다. 원당암 앞길을 산책하다가 갑자기, '아차! 그 문제 한 번 더 보아야겠다.'고하여 꼼꼼히 살펴본 문제, 부처님께 절하다가 생각이 나서 한 번 더 찾아본 문제 등, 일부러 기억하고 거듭거듭 따져 봤던 문제들만 출제되어 있었습니다. 어찌 저희들이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있었겠습니까? 스님, 감사합니다. 모두가 스님 덕입니다."
"나도 너희들 덕에 법문할 이야깃거리가 하나 더 생겼구나. 나도 너희들에게 감사한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웃음꽃을 피웠다.

이 산승은 간곡히 당부 드린다. 지금 현재 앞에서 이야기한 일상의 기도를 하지 않고 있는 불자라면 이 기회에 꼭 실천해 보라는 것을!

기한은 스스로의 형편에 맞게 정하라. 백일을 하나의 기한으로 삼아도 좋고, 40일을 기한으로 삼아도 좋다. 그것도 어렵다면 삼칠일[21일], 21일도 어렵다면 일주일, 아니 단 3일이라도 좋다. 꼭 한 번 해보자. 틀림없이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건강도 좋아질 것이며, 소원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뒷날로 미루지 말고 지금 이 자리에서 한마음으로 염불하며, 신심(信心)을 이루고 뜻을 성취하기 바란다.


Posted by 하늘위로
2009. 7. 26. 20:57
2) 108번뇌와 108배

불교의 절하는 숫자에 대한 근거는 뚜렷하다.

3배를 드리는 것은 삼보(三寶)에 귀의하여 탐심, 진심, 치심의 삼독심(三毒心)을 끊고 삼학(三學, 戒, 定, 慧)을 닦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고, 53배는 참회 53불(佛)에 대한 경배, 1천배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겁(賢劫)의 1천 부처님께 1배씩 절을 올리는 것이며, 3천배는 과거, 현재, 미래의 3대겁에 출현하는 3천 부처님께 1배씩의 절을 올리는 예법이다.

그렇다면 108배는 무엇인가? 바로 이 절이 108번뇌의 소멸과 관련되어 있음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108이라는 숫자가 108번뇌를 뜻한다는 것은 쉽게 파악하면서도, 어떻게 해서 중생의 번뇌를 108이라는 숫자로 분류하였는지를 분명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108번뇌는 중생의 근본 번뇌이다. 이 108번뇌는 육근(六根)과 육진(六塵: 六境이라고도 함)이 서로 만날 때 생겨난다.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 뜻[意]의 육근이 색깔[色], 소리[聲], 향기[香], 맛[味], 감촉[觸], 법[法]의 6진을 상대할 때 먼저 좋다[好], 나쁘다[惡], 좋지도 싫지도 않다[平等]는 세 가지 인식 작용을 일으킨다.
그리고 다시 좋은 것은 즐겁게 받아들이고[樂受], 나쁜 것은 괴롭게 받아들이며[苦受], 좋지도 싫지도 않은 것에 대하여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게 방치하는[捨受] 것이다.
곧 6근과 6진의 하나 하나가 부딪칠 때 좋고[好], 나쁘고[惡], 평등하고[平等], 괴롭고[苦], 즐겁고[樂], 버리는[捨] 여섯 가지 감각이 나타나기 때문에, 6*6=36, 즉 서른여섯가지의 번뇌가 생겨나게 된다.

이 36번뇌를 중생은 과거에도 했었고, 현재에도 하고 있고 미래에도 할 것이기 때문에, 6*6=36에 과거, 현재, 미래의 3을 곱하여 108번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를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
| 六 根 六 塵 |
| |
| 눈[眼] 색깔[色] |
| 귀[耳] 소리[聲] |
| 코[鼻] 향기[香] |
| 혀[舌] 맛[味] |
| 몸[身] 감촉[觸] |
| 뜻[意] 법[法] |
| |
| 好, 惡, 平等, 苦, 樂, 捨 (6*6=36) |
| * |
| 과거, 현재, 미래 (36*3) |
| |
| 108번뇌 |
+--------------------------------------+

이와 같은 108번뇌가 벌어지고 또 벌어져서 팔만 사천 번뇌 망상을 이루게 되고, 그 번뇌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무수히 왔다갔다하면서 마음을 흐트려놓기 때문에 중생은 번뇌로 인해 시달리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108번뇌! 이것은 우리의 흩어진 마음을 뜻한다. 하나로 모아진 마음이 아니라 바깥으로 흩어진 마음, 근원을 돌아보는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흘러 내려가는 유전(流轉)을 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108번뇌와 깊이 결속되어 있는 삶이 중생의 삶인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108번뇌는 108번의 절을 하는 동안 스스로 순화되어 삼매의 힘으로 변화된다.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일심의 원천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환멸(還滅)의 시간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무한한 능력, 영원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이 번뇌를 따라 밖으로 밖으로 뿔뿔이 흩어질 때는 무능에 빠지고 끝없는 생사의 유전 속으로 전락하고 만다. 하지만 번뇌 속으로 끊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을 때 삼매의 힘은 다시 되살아나고, 원래의 무한 능력이 우리에게서 한 번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108배로써 108번뇌를 끊는다."

이 108배속에는 번뇌를 쫓아 흘러 내려가는 삶을 일심의 원천으로 돌리겠다는 의지가 숨겨져 있다. 유전이 아니라 환멸의 삶, 번뇌 이전의 영원 생명으로 돌아가 부처님과 하나가 되는 삶, 곧 성불(成佛)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번뇌는 끊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하나로 모을 때 번뇌는 저절로 사라진다. 108배의 절은 번뇌를 끊는 의식이 아니라 깊은 삼매(三昧) 속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방편이다. 우리가 매일매일 108배의 정진을 통하여 삼매 속으로 몰입할 때 우리의 모든 번뇌는 차츰 사라지게 된다.
삼매와 환멸과 성불! 이것이 우리가 108배를 하는 까닭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Posted by 하늘위로